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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 고궁의 사계, - 창경궁의 봄 -울긋불긋 꽃대궐

 고궁의 사계, - 창경궁의 봄 -

 

 

울긋불긋 꽃대궐

 

 

박 상 인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동요 고향의 봄에는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그 꽃 대궐이 어디일까?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중에 철들고 생각해 보니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창경궁이 바로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봄은 어느새 대궐 수문장의 허가도 없이 높은 궁궐의 담장을 훌쩍 넘어 냄새도 향긋한 냉이와 꽃다지들의 가녀린 꽃대를 뽑아 올린다. 대궐 안 여기저기 볕이 잘 드는 담장 아래나, 정전 월대 앞 장대석 틈새와 박석 사이에서도 꽃이 핀다.



이즘이면 양화당(養和堂)과 영춘헌(迎春軒) 사이 장군바위를 거처 계단 끝자리, 그 옛날 정조 임금님의 효성이 어린 자경전(慈景殿) 터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정말 장관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전각들을 덮고 있는 중후한 골기와 지붕 위로 역사의 파도가 일렁이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춘당지(春塘池) 물가에서 겨우내 찬바람에 일렁이던 수양버들의 가는 줄기가 연록색으로 변하면 봄이다. 그 아래 얼음이 풀린 연못에 열댓 쌍의 원앙들이 노닐면 그 또한 봄이 왔다는 뜻이다. 수놈 원앙의 혼인색이 화려한 꽃단장을 끝내고 더욱 선명해지면 이미 봄이 왔다는 증거이다. 이런 봄날에는 그 원양들의 그림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의 삼각대가 숲을 이룬다.




또 있다. 근년에 들어와 흔해졌지만 춘당지 위편 대온실 가는 길목의 야생화 학습단지 앞쪽에도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는 나무가 있으니 바로 히어리이다. 개나리보다 좀 일찍 노란 꽃을 아래로 주렁주렁 늘어뜨린 모습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히어리란 나무는 분명 우리나라 특산으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환경청 보호식물 목록에 올라 대접받던 꽃나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개체 수가 늘어 흔한 나무가 되었으나 여전히 이른 봄에 사랑받고 있는 창경궁의 대표적인 봄꽃이다.

4월 초순으로 들어서면 근년에 새로 심은 유백색과 분홍의 미선나무 꽃도 눈길을 끈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예쁜 꽃들이 피어 향기를 퍼뜨린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도 궁궐 안 숲에서 노란 꽃술로 그들 나름의 흥겨운 봄맞이 축제를 벌인다.

 


창경궁은 창덕궁(昌德宮)과 이웃하고 있다. 조선 제9대 성종께서 당신의 할머니와 두 분의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궁궐이다. 지금 서울에 다섯 곳의 궁궐이 있지만 창경궁은 정치를 목적으로 세운 대궐이 아니라 오로지 효성으로 지은 궁전이다. 따라서 창경궁 권역은 다른 대궐에 비해 설계자체가 축소되어 아담하며 대궐이 남쪽을 향해 있어야 하는 관례를 깨고 동쪽을 향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 소박하고 실용적이며 수목을 많이 식재했다.

따라서 국보 제249동궐도(東闕圖)’에서 볼 수 있듯이 늘 푸른나무와 꽃피는 나무들이 대궐 주위를 감싸고 있어 꽃대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다시 금천을 따라 옥류천 길을 걸어보자. 구슬 같은 맑은 물은 그 옛날 국왕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친히 쟁기질했던 내농포 자리, 일제가 그 곳을 연못으로 바꾼 춘당지에서 흘러내린다. 이 춘당지 주위가 봄맞이 장소로는 으뜸이다.

 몸이 나른해지면 다리가 뻣뻣해지면 좀 쉬어야 한다. 이럴 때면 옥류천 물길을 따라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수각에 걸터앉아 옥천교 아래 무지개 교각 쪽을 보아야 한다. 옥천교를 중심으로 양쪽 축대 위에 피어 있는 꽃구름을 보지 못한 이는 창경궁의 봄을 봤다고 말할 수 없다. 남쪽보다는 좀 늦지만 분홍빛 짙은 매화와 이어지는 살구꽃, 앵두꽃, 그리고 조선의 왕성(王姓)을 상징하는 오얏꽃(자두꽃)이 개울에 터널을 만들면 궁궐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그 많던 창경원의 벚나무들은 다 어떻게 됐으며 어디로 갔느냐?”. 일제는 강압으로 국권을 찬탈하고 1909, 경운궁(慶運宮 德壽宮)에 계시던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켜 그 곳에 유폐시키고 순종을 창덕궁으로 모신다. 곧 이어서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옆에 있는 대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여 짐승 똥오줌 싸는 동물원을 짓고, 나무와 꽃을 심어 식물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궁중의 소중한 유물을 빼앗아 작은 박물원을 열었다,

즉 삼원을 만들어 놓고 곧 이어 국민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일반인들에게 놀이터로 공개하게 된다. 그때 입장료를 받기 위해 쳐 놓은 담장이 지금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가르는 담장이다. 심지어 1917년에는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왜벚나무 700여 그루를 배로 들여와서 창경궁 내에 심었고, 궁궐의 중심이며 만조백관이 모여 조회하던 국가 공식 행사장인 명전전 조정 바닥의 박석을 걷어내고 가로세로 줄지어 꽃나무를 심은 작태도 옛 엽서 사진에 보인다.

그때 이후 계속 벚나무를 더욱 많이 심고 그 벚나무가 자라 꽃이 만개할 무렵에는 야간개장 벚꽃놀이 잔치를 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이 벚꽃놀이는 광복이 되고 난 후 1980년 초 88올림픽 준비를 위해 창경궁으로 제 모습, 제 이름을 찾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 많던 벚나무들은 1980년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면서 여의도를 개발할 때 윤중제에 옮겨심기도 하고, 일부는 과천 동물원에 이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혜화동에서 종로를 오가는 사람들 중에는 넘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창경궁 관리실이나 문화재청으로 항의 전화를 하는 애국시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이 어느 시국인데 아직도 창경궁 안에 벚나무를 꽃피게 하고 있느냐? 당장 없애라!”

그런 항의는 고맙기도 하고 약간 씁쓸하기도 하다. 그것은 오해이다. 해마다 4월 초순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의 활짝 열린 대문 안쪽에 흐드러지게 핀 꽃은 벚꽃이 아니라 매화와 살구꽃이다. 물론 지금도 궁궐 경내에 벚나무 몇 그루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무가 무슨 죄인가. 일본이 국화로 하는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어디인지는 아직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우리나라 한라산이 왕벚나무의 자생지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 또한 분명하지는 않다. 일본에도 왕벚나무 자생지는 없다. 왕벚나무는 일본 동경 근처의 어느 농장에서 자연교잡종에 의해 발견된 것을 선발하여 널리 퍼뜨렸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5월로 들어서면 춘당지로 가는 길섶과 그 주위 수목들은 완전히 초록대궐 일색으로 변한다. 산책로를 거닐다 보면 처진 귀룽나무 가지의 푸른 잎줄기 끝에 흰 눈 같은 꽃송이들이 뭉쳐 있고, 잎이 손바닥만 한 함박꽃나무의 새 줄기 끝에 새색시의 뽀얀 얼굴 같이 해맑은 꽃송이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곱다. 키다리 말채나무나 층층나무도 멀리서 보면 잔잔한 꽃이 높은 하늘 위에서 벌 나비를 부른다.

춘당지를 가운데 두고 여기저기 붉은 갑옷에 푸른 머리칼(赤甲蒼髮)을 한 소나무 햇순 끝에서 송홧가루가 날리고 다래나무 줄기가 하늘을 향해 기다란 손을 뻗을 때쯤이면 관덕정, 집춘문을 둘러싼 우거진 숲속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연못에 왜가리가 한 다리로 봄잠을 청할 때면 봄도 한창 무르익는다. 궁궐의 봄, 그 절정은 아무래도 진달래과의 흐드러진 꽃 퍼레이드일 것이다. 좀 이르게 핀 진달래와 산책로 좌우에 핀 철쭉과 산철쭉, 그리고 진분홍의 영산홍은 연산군이 사랑했던 꽃이다. 연산군은 영산홍을 잘 키워 바친 신하에게 각궁() 한 벌을 하사하기도 하고 궐 내에 영산홍과 철쭉 3천 여 그루를 심게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무엇보다도 봄날 창경궁에서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되는 정경이 하나 있다. 춘당지 들머리에 젊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꽈배기처럼 연리목으로 자라고 있고 그 앞, 처진소나무가 자기 머리채를 감당하지 못해 든든한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 사이길 좌우에 핀 흰철쭉이 만개한 장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창경궁에서 훈풍의 5월을 제대로 일러주는 나무는 산사이다. 산사를 영어로 메이 플라워(may flower)라 한다. 이 나무가 이름값을 하느라고 55일 어린이날을 전후 하여 꽃이 핀다. 산사 열매는 살균작용이 있다. 술도 담고 정과를 만들어 수라상에도 올랐다. 줄기를 잘 다듬어 지팡이를 만들어 왕조시대 80세 넘는 대신들이 퇴임할 때 명아주지팡이와 함께 선물하기도 했다. 산사나무가 서양에서는 벼락을 막아주고 동양에서는 저승사자를 물리친다는 믿음 때문이다.

통명전 뒤뜰에는 아름드리 거목 뽕나무 한 그루가 위의를 갖추고 긴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이야 너무 크고 높아서 뽕잎을 따기는 어렵겠으나 그 옛날 중전을 비롯한 궁중 여인들이 친잠례(親蠶禮)를 했던 뽕나무 중의 한 그루였을 것이다. 뽕나무 가지마다 오디가 살찌고, 그 아래 열천의 맑은 물이 연당으로 흐르면서 봄날은 간다. 전각 앞 해묵은 소나무 가지에서 이는 솔바람 향기가 후원으로 퍼지고, 푸른 하늘이 청잣빛으로 물들면 궁궐의 봄도 무르익는다.

그 옛날 왕조가 번성하던 시절. 나라의 영광과 고난을 함께 했던 옛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명상에 잠기면 봄날은 나른하기도 하고 싱그럽기도 하다. 창경궁의 봄은 겨우내 메말랐던 우리 가슴에 역사의 향기뿐만 아니라 꽃과 나무들의 향기가 주는 힐링의 선물꾸러미이다. 그래서 이몽룡이 과거보던 때 시험 제목에 나왔던 절구처럼 춘당의 봄 색깔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春塘春色 古今同춘당춘색 고금동)’는 말이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다. 봄이 있어 꽃 대궐 창경궁이 더욱 화려하고 우리는 그 봄을 보면서 가슴에 희망을 키운다.식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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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1-02-0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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