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마을숲을 찾아서 / 원주 <성황림(城隍林)>-천연기념물 93호 - 신(神)이 주석하는 숲
원고 17.6매
마을숲을 찾아서 / 원주 <성황림(城隍林)>-천연기념물 93호
신(神)이 주석하는 숲
박 상 인(숲해설가)
마을숲이란 무엇인가? 학자들 간에도 약간의 이견이 있어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마을숲은 ‘마을의 문화와 신앙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생활 또는 문화와 직접적 관련을 가지고 있는 숲으로, 주민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 유지되어 온 숲’을 말한다.
불과 한 세대 전만하더라도 전국 어디에나 그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외지인까지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그런 숲이 마을마다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여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들어섬에 따라 도시의 인구집중과 팽창, 그리고 농촌사회의 동공화로 마을의 전설과 역사를 지니고 있던 마을숲이 소실되어 가고 있다. 조상이 남긴 건축물, 돌탑, 예술품 등은 박물관에서 보호할 수 있지만 마을숲은 생명이 있는 유산이므로 박물관에 가두어 둘 수도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전국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거나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생태유산인 마을숲을 찾아 현재의 상황을 널리 알리고 보존대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만물의 이름 속에는 그 사물의 특성과 내력을 포함하고 있다. 원주 성황림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면적 54,314㎢의 작은 숲이다. 〈대동여지도〉에도 이름이 나오니 줄잡아 300여 년은 된 오랜 숲이다. 신림면에는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 신당과 숲이 남아 있으니 여기가 신의 골짜기, 신이 깃든 숲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치악산 남대봉(1,181m) 아래 상원사란 절이 있다. 이 상원사 입구 성남리 성황림은 산맥의 형상이 마치 양팔을 펴서 안을 때 두 손이 오므라지는 좁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곳을 풍수에서는 수구막이라고도 한다.
당집을 만드는 연유는 외부로부터의 피해인 난리나 역병 등을 마을 입구에서 방비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전하게 위치를 가리려는 본능의 발로이다. 그리고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기원하려는 소박하고 간절한 마음의 결과이다.
이러한 복합적 연유로 마을로 들어오는 호리병 지점에 당집을 짓고 그 곳에 하늘과 통하는 나무를 심어 그 주위를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외지로 나갈 때는 무사귀환을 빌고 들어올 때는 안도의 마음으로 정성을 바친 곳으로 정해지게 된 것이다. 보통 성황당은 고갯마루에 자리하는 것이 상례인대 이곳 성황당은 평지에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제 숲 안으로 들어 가보자. 평상시에는 큰 자물쇠로 잠겨있어 출입이 통제된다. 숲에 들어가려면 원주시 문화관광국에 사전 협조를 얻어야 한다. 이곳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유는 ‘낙엽활엽수림의 자원보존과 관련 민속행사의 학술적 가치’ 때문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이 숲은 낙엽활엽수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계절에 따라 상황이 아주 다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나뭇가지와 복분자 줄기, 줄딸기, 사위질빵, 큰으아리 등의 덩굴성식물이 뒤엉키어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그동안 수차례 탐방했던 내 경험으로 봐서 봄날이 숲 내부 분위기를 알기에 가장 좋은 철이 아닌가 한다.
새로 단장한 귀염성 있는 담장 판문의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당집 오른 편에 우선 고개를 위로 젖혀야 끝이 보일 정도의 우람한 전나무에 기가 죽는다. 키가 30m나 되고 가슴높이 둘레가 130㎝나 되어 장정 세 사람이 팔을 벌려야 둘러 안을 수 있다. 또 당집 왼편에 서있는 음나무는 지름 95㎝나 되는 그야말로 노거수로 작은 당집을 호위하듯 위엄을 부리고 있다. 당집과 신목들은 뒤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바닥보다 약간 높은 대(臺) 위에 있어 이런 형태가 신단수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차가 다니는 큰길이 이 숲을 약간 돌아 나서 숲 안이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지만 원래는 마을이나 상원사로 다니는 찻길이 바로 이 당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실재로 2~3m 너비의 옛길 흔적이 숲 안에 있다.
성황숲의 중요 식생을 보면, 당집 옆의 큰 전나무는 인간의 뜻을 하늘로 전하는 상록의 신수(神樹)이다. 그 옆의 낙엽수 엄나무는 시골 사람들이 집 주위에 흔히 심었듯이 서슬 퍼런 가시로 사악한 것들의 범접을 막으려는 상징의 의도일 것이다. 신당 주위의 복자기나무는 그야말로 신이 오르내린다고 믿는 나무이다. 이 나무들의 가을 단풍을 본 이들은 신의 뜻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여 년 간 울타리를 둘러쳐서 출입을 통제한 까닭에 단풍나무, 왕느릅, 돌배나무, 피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층층나무, 쪽동백, 버드나무 따위가 건강히 자라고, 가을에 열매가 빛나는 야광나무, 고추나무, 노박덩굴 등이 눈에 띈다. 더구나 숲의 위쪽마을이 보이는 논과 이어지는 지점에 2,3백 년은 됐음직한 노송 몇 그루가 있어 옛날에는 이곳이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초본으로는 이른 봄에 갓 녹은 눈과 바삭거리는 낙엽 틈새로 올라오는 복수초, 남산제비꽃, 당집 뒤로 흐르는 얕은 개울가의 물봉선 등 모두 90여 종의 식물들이 중부권 활엽식수대임을 증명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울타리를 친 부분만 성황림 영역이 아니라 길 왼편 산비탈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역이고 급경사지란 지형관계로 오히려 사람의 간섭이 적어 더 자연스럽고 다양하며 왕성한 식생을 보이고 있다.
원래 이 숲은 윗당산, 남편숲, 할배당산이라 하고, 여기서부터 약 500m 아래에 아랫당산, 아내숲, 할매당산이란 숲이 있다. 아랫당산도 1972년 수림지(천연기념물240호)로 지정되었으나 1978년 수해가 나 숲이 많이 파괴되어 해제되었다.
지금도 성남리 사람들은 음력 5월 6일과 7월 7일에 정성을 모아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축문과 소지를 올리고 있는데 이런 점이 바로 우리 토속신앙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어느 마을을 찾아가거나 그 앞을 지나갈 때, 큰 숲이 자리한 전경을 만날 때, 우리는 왠지 마음이 놓이고 그 곳의 인심을 추측할 수 있다. 마을숲은 그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숲이 담고 있는 문화는 마을 사람들의 품격을 내 보이는 경관(Landscape)이자 랜드 마크(Landmark)이고 나아가 마을 사람들의 심상(Mindscape)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오래된 숲이 있는 마을이 보이면 우리 조상들은 ‘그 마을에 사람이 산다’고 했다. 지금도 마을숲은 그 마을 주민들의 품격이라는데 방점을 찍는다. 부디 성남면 성황림이 앞으로도 수백 년, 수천 년 잘 보전되어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현명했다.’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살아왔고, 힐링을 너머 삶에 찌든 민중들과 함께 하는 성소로 자리해 왔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실증해 주기를 빌어본다. 상성황신위(上城隍神位)께 두 손을 모은다.【식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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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13회 작성일 21-02-08 13:41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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