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수필- 새로운 삶의 전환점


수필
새로운 삶의 전환점
권 오 분(수필가)
많은 사람들이 일 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달을 선택하라면 5월이라고들 합니다. ‘소생’의 뜻으로만 생각하면 3월을 말하기도 하지만 찬란함이 없어서 눈에 보이는 봄은 5월이 최고이지요. 그 때문일까요? 연중 공식적인 행사가 가장 많은 달이 또한 5월인 듯합니다.
5월 1일, 5월 5일, 5월 8일, 5월 15일. 그 뿐인가요. 우리 집은 13일에 태어난 아이가 있고 가장 중요한 날인 결혼기념일이 있습니다. 5월 10일이 그날입니다. 5월에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며 5 곱하기 2를 해서 5월 10일에 결혼식을 하자고 했습니다. 수학만 없었으면 내 인생은 훨씬 아름다웠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일 거라는 착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월 10일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구름과 하늘과 그 하늘에 밤마다 가득하게 반짝이던 별과 날마다 변모하는 자태를 보여 주던 달, 아침에 뜨는 해와 찬란한 저녁노을, 맑은 강과 푸른 산, 그 안에 무수한 풀과 꽃과 나무들, 새와 물고기, 강가의 자갈과 모래와 두 손으로 가득 떠서 마시면 차고 시원한 맑은 물이 가뭄도 없이 가득히 흐르던 남한강 상류, 여름의 범람은 범람대로 가슴 조이고 설레고 안타까운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고 그 위에 눈이 내리면 티끌 하나 없이 하얗게 동네를 휘감고 있던 순백의 겨울 강. 그런 동화 같은 시골에서 세상이 모두 그럴 거라고 알고 살았습니다.
많은 행사들이 즐비한 5월의 달력에 내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날이 하나 생긴 것이지요. 그 삶 속에 새로운 지경이 생기고 나이테가 자라나고 마디와 옹이가 수없이 생겨났습니다. ‘5 곱하기 2는 10’이라는 곱셈 하나로 결혼을 결정했으니 삶의 어려움이 어땠을지 상상이 되는지요. 가난한 집안에 42세에 홀로 7남매를 키워내신 시어머님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님 보다는 참으로 다행인 셈이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습니다.
26살이나 된, 생각이 멀쩡한 아가씨가 그렇게 결혼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어이없다고 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딸아이는 나를 놀립니다. 그러한 단순함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직도 홀로인 삶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결혼하면 이렇겠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던 숙맥이었으니까요
4월에 피었다가 5월이면 모두 지고 없을 제비꽃이 무덤가 풀숲에 늦게까지 피어있는 것을 보고 결혼 전날인 것도 깜빡하고 꽃따기에 열중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제비꽃 부케’가 만들어 졌고,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빨간 신부가 아름다운 성가에 흠뻑 취한채 신부입장을 했습니다. 평소에 화장을 안 하던 터라 맨 얼굴에 집에서 친구가 챙겨온 드레스를 입고 곧바로 성당으로 갔으니 신부 얼굴이 왜 저렇게 빨개졌냐고 수군대는 소리가 제 귀에도 들리더군요. 성가대가 직접 불러주는 코러스가 너무 훌륭해서 하객들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신랑이나 하객들은 개의치 않고 저 혼자 행복했던 거지요. 저의 행복 이야기는 흰 드레스에 보랏빛 제비꽃과 하얀색 마가렛을 곁들여 만든 부케를 들고 입장할 때까지였습니다.
연 중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행사에 목숨을 거는지 모릅니다. 선물 없이 잊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싸움을 넘어 이혼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나는 남들이 다 같이 하는 행사에는 의미를 두지 않고 삽니다. 생일이나 성탄절 연말연시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를 완전히 바꿔 놓은 결혼기념일은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외식한번 한 적도 없고 꽃다발이나 선물을 주고받은 적도 없지만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뭉뚱그려 5월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자연현상 때문만이 아니고 180도로 변한 시점이 있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식 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결혼은 그에 대한 준비나 각오가 없이는 누구나 행복감 보다는 불행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시어머님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5월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오늘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5월이 있었기에 아들과 딸이 태어났고 복잡하고 슬프고 아픈 세월 속에서도 아이들이 무사히 잘 자라서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해내며 또 다른 삶들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5월에 또 하나의 삶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저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일입니다. 나무들을 베어 내지 않고도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한 번씩 책을 낼 때마다 ‘내 글이 나무를 희생하면서 책을 만들만큼의 가치가 있는걸까?’ 라는 회의를 갖곤 했었는데 이제는 나무의 죽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글을 쓰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이 잡지의 출간이, 그 속에 내 글의 씨앗을 심는 일이 새로운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지경을 넓히고 새 세상을 보여 주는 멋있고 아름답고 옹골찬 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섭니다. 어려서 누렸던 청정한 자연 현상. 하늘과 나무와 꽃들과 별들이 가득했던 밤하늘까지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겠다는 희망의 씨앗을 심습니다.【식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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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6회 작성일 21-02-08 13:3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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